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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겁게 닫혀오는 눈꺼풀 위로 마치 꿈결처럼 어느 계단 위에서 젠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젠씨의 신작 공연이었던 것 같다. 대기실 계단에서 그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손등에 키스를 받았다. 팬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받은 것 같아 황홀하던 찰나에 멀리서 그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다. 

  새카만 어둠이 밀려왔다. 눈을 끔뻑일 때마다 주마등처럼 계단에서 디딜 곳을 잃고 붕 떠 있는 나의 두 다리가 짤막짤막 보였다. 그에게 건넨 꽃다발처럼 가볍게 허공을 가르는 나, 어느새 사라진 젠씨, 저 높은 곳에서 나를 원망스럽게 내려다보는 유성. 병원에서 돌아와 안정을 취하는 내게 찾아와 용서를 빌던 그, 나를 원망하며 텔레비전을 깨뜨리는 그. 모든 것이 조각난 퍼즐처럼 퍼져나가 점점 까맣게 번져갔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는 어둠의 구렁텅이에 떨어져 가는 나의 귓가에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괜찮아, 성희. 네가 혹시나 나 이외의 다른 것을 수용할 공간이 있다면 몇 번이고 그 흔적을 지워내고 깨뜨려서 나 하나만 남겨두면 되니까. 염려하지 마. 걱정하지 마. 사랑해. 나의 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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