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래의 왕자님 All Star 미카제 아이 루트 & 드라마씨디 네타 있습니다.
어릴 적 내 앞에는 세 가지 길이 있었다. 2년 정도 미술학원을 다닌 적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다. 엄마는 내 그림을 보더니 그림에 재능을 보인다고 하여 화가가 되라는 말을 했다. 4년 정도 피아노학원을 다닌 적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이었다. 엄마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내게 피아니스트가 되라는 말을 했다. 3년 정도 종합학원을 다닌 적이 있다. 엄마는 내 시험 점수를 보면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도록 노력하라고 했다. 나는 길 앞에서 망설이며 곤혹스러워 하다가 우연히 내 옆에 나타난 길로 발을 들였다. 그것이 소설이었다.
아이에게는 선택의 길이 없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음악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아이돌로서의 길 안에 그의 몸은 서있었다. 아이는 그것에 대해 한 번도 불행하다거나 슬프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생각하지 못한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이다. 아이는 아이돌로 활동하면서 기계적으로 하던 음악을 점점 좋아하게 되었고 지금은 거기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 나는 아이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많은 것이 다른 우리 두 사람에게 있어서 이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카메라 앞에서 진행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아이를 보았다. 그는 일종의 아이돌용 미소라고 불리는 환한 웃음과 밝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버라이어티 방송에선 항상 같은 패턴과 엉뚱한 대답으로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되곤 했지만 이런 식의 토크쇼는 익숙했다. 이번 토크쇼에는 아이 혼자 불려왔다. 콰르텟 나잇이라는 유닛에 소속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모두 솔로 활동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들이 모이는 때는 유닛 활동이 있을 때였다. 본래 그들부터가 솔로 활동을 하던 아이돌이기도 했기에 이 모습은 익숙했다. 아이는 가끔 내가 서있는 스태프석을 보며 눈을 마주했다. 나는 푸른 물결이 담긴 눈동자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마주 웃었다.
진행자가 웃으며 큐카드를 보고는 이번에는 음악에 대해 물어보겠다고 얘기했다. 아이는 음악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웃었다. 진행자가 미카제씨는 음악을 참 좋아하는 모양이라고 말하자 그가 눈을 깜박였다. 나는 저 얼굴이 익숙했다. 내 인터뷰 영상 같은 것을 볼 때 가끔 저런 반응을 발견하곤 했다. 자각하지 못하는 감정이 아이에게서도 드러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것이 바로 아이의 성장을 보여주는 것이었기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라, 비파쨩. 와 있었네?” “츠키미야씨. 오랜만이에요.”
츠키미야가 부채와 물을 들고 옆으로 다가왔다. 밝게 웃는 모양이 무척 반가워보였다. 그 얼굴로 내리는 땀이 그가 이전까지 스케줄을 하고 왔다는 걸 증명했다. 나는 그에게 마주 웃어보였다. 츠키미야가 바로 옆 자리에 앉았다.
“이 방송 시나리오 담당이 비파쨩이라면서?” “토크쇼 시나리오는 이 방송이 처음이거든요. 마감이 끝난 김에 잘 진행되고 있는지 보러 왔어요.”
“이제 10회째인데 상당히 마감이 밀렸던 모양이네. 지치진 않았어?” “괜찮아요. 아이가 페이스 조절을 해줬거든요.”
츠키미야씨가 물을 건네주었다. 조금이라도 지치면 주저 말고 말해달라고 해줬다. 나는 감사 인사를 전하고 다시 무대를 보았다. 아이는 이제 본래 계획되어 있던 마지막 질문을 받았다. 아이가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 어떤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아이는 그 질문을 받고 잠시 말을 늘였다. 일순간 단어 선택을 고심했다. 나는 조금 아래로 내린 그의 시선을 따라 무대 밑 기자재를 보았다. 빛에 반사되어 형태가 잘 보이지 않았다. 아이가 곧 대답을 했고 나는 다시 그를 보았다. 아이는 맑게 웃고 있었다.
“아이쨩, 많이 변했네.” “그런가요?” “변했다기보단 성장했어.”
“그렇죠.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많이 성장했어요. 감정 표현이 더 풍부해졌고 좋아하는 것을 더 잘 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어요.”
“응, 비파쨩 덕분이야.”
“그런가요?”
“비파쨩이 아이쨩에게 감정을 알려줬잖아.” 나는 츠키미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아이를 보았다. 나도 아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아이는 마지막으로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피아노 앞에 섰다. 이번에 부를 노래는 발라드 곡이었다. 진행자가 곡 제목을 말하고 아이는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피아노 음색을 들으며 나는 눈을 감았다. 곧 아이의 노랫소리가 공연장 가득 퍼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자주 가는 음반 가게에 들렀다. 이번에 새로 나온 아이의 앨범은 매장의 가운데 매대에 놓여있었다. NEW라고 적힌 카드가 앨범마다 붙었고 매대에는 오리콘 데일리 2위라고 적어두었다. 내가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자 아이가 다가왔다.
“내 앨범은 이미 가지고 있잖아?” “아이가 준 것도 있고 내가 산 것도 있지.” “더 살 필요가 있어? 비파가 산 것만 해도 꽤 될 것 아냐.” “역시 잘 아네.”
“비파가 그동안 사들인 내 앨범 수만 봐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어.” 나는 작게 웃었다. 아이의 목소리에는 기쁨과 못마땅함이 섞여있었다. 자신의 앨범을, 음악을 좋아해주는 것에 대해 아이는 매번 기뻐했지만 반면에 10장 이상 살 때는 꼭 이런 치기 어린 불만을 보이곤 했다. 과소비도 문제였지만 내가 방 안에 장식해두고 앨범만 보는 탓도 있었다.
“아이와 관련된 것들은 아무리 가져도 부족한걸.” “비파한텐 내가 있잖아? 본인이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거야?” “그럴 리가.” 고개를 들어서 아이를 보니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있었다. 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냥 내 욕심이 과한 거야. 아이를 좋아하는 만큼, 사랑하는 만큼 더욱 더 가지고 싶은 거지.”
“잘 모르겠어. 인간의 욕심은 너무 광범위하고 깊어서 아무리 분석해도 끝이 없어.”
“지금 같은 경우는 사랑에 기반한 거야. 아이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았을 때 욕심을 느끼지 않았어?” 내 질문에 아이는 생각에 잠겼다. 눈을 살짝 아래로 내리깔고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곧 다시 나를 마주 보았다.
“응, 이건 알겠어. 내 포스터나 음반 같은 것을 열심히 모아서 바라보고 있는 비파를 보면 가끔 그것들이 아니라 날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생겨. 그게 바로 욕심인 거지?” “확실히 그렇긴 한데.” “그런데?” “아이를 더 봐줬으면 했어?”
“응.” 너무 간단하게 인정하는 것도 아이의 장점이었지만 이럴 땐 항상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면 매번 아이에게 놀림거리가 되곤 했다. 이번에도 역시 그 타이밍을 아이가 놓칠 리 없었다. 나는 얼른 앨범으로 고개를 돌렸다. 앨범 표지에 피아노를 연주하는 아이의 모습 위에 하얀 깃털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 안에서 아이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이건 본인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임에 분명했다. 음악을 할 때면 항상 나오는 한순간의 것과 닮아 있었다. 또한 그것은 매번 문학잡지 인터뷰 사진에서 자신도 모르게 웃고 있는 사진을 발견할 때의 기분과 같았다. 나는 이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많은 것이 다른 우리 두 사람이지만 자신이 걷고 있는 이 길을 사랑한다는 점만은 닮았다. 그렇기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함께 걸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안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