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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둥거리는 손으로 인해 책상 위에 있던 펜이 구르면서 바닥으로 힘없이 툭 떨어졌다. 갈 곳을 잃어버려 바르르 떨려오는 것이 퍽 안쓰럽다. 클리브는 오른손으로 제 얼굴을 쓸면서 꽉 다문 잇새 사이로 응집된 숨을 뱉어냈다.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눈은 빛을 잃은 지 오래였다. 흐트러진 종이 사이로 잡동사니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어렵사리 손을 걷어내곤 고개를 틀어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액자를 바라보았다. 어색하게 웃고 있는 어린 연인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여러 감정이 뒤엉킨 붉은 바다가 일렁인다. 도저히 버티지 못하겠는 것인지 액자를 뒤집으려던 클리브는 결국 의자 위에서 일어나 자리를 벗어났다. 사라진 여루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기 힘든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그의 집 어디에도 그녀의 흔적이 남지 않은 곳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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