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어느 집의 마당에 발을 디딘다. 마치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내리기 시작한 눈을 신은 신경쓰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잠시 눈앞의 집에 머문다. 특별함이라고는 없는 평범한 2층의 단독주택엔 너무도 이른 시간에 맞게 불빛 하나 없다. 아니, 툇마루엔 작은 빛 하나가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고 있었으며, 그 불빛의 곁엔 존재가 있었다. 작게 울려 퍼지는 음악에 감싸여, 내리는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여성을 신은 어딘지 안도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정말 변함이 없는 녀석이군."
여성의 곁으로 다가가는 신. 눈에 홀려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여성은 신의 다가옴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 짙은 갈색의 손이 제 머리카락을 살며시 쥐는 것도, 그곳에 입맞춤을 내리는 것도... 그녀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바라본다. 핸드폰의 액정 빛만이 있는 세계에서 여성의 눈동자는 제 색을 온전히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아름답다고 여긴다. 자신의 쪽으로 향해 있지 않더라도..
"여전히 눈만 보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군. 네코."
"토토..씨?"
"알아차리는게 느리다."
"매번 소리 없이 오시잖아요. 인기척 좀 내주세요."
"그래도 알아채라. 네코면 그 정도는 가능하지 않나?"
"저는 사람이에요."
신은 여성의 바로 옆자리에 앉으며, 말을 건낸다. 갈색의 눈동자에 비친 그의 모습은 그녀에게 말을 걸기 전과는 틀렸다. 새하얀 날개는 사라지고, 복장도 바뀌어 있었다. 검은색의 코트를 입은 그를 아주 잠깐이지만 멍하니 바라 본 여성이었다. 허나 곧 신과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는 그 모습은 둘이 첫만남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자신을 님을 붙이지 않고 부르는 인간을 괘씸하다고 여기기는커녕 제 의견을 또박또박 얘기하는 모습에 토토는 작게 웃어 보인다.
"왜 또 이런 시간에 깨어있는거냐. 내가 몇 번이나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몸을 너무 차갑게나 덥게 하지 말라고 얘기하지 않았나?"
"얘기 하셨죠."
"호오- 근데도 감히 내 말을 무시하면서까지 이런 시간에 깨어있는거지?'"결국 잠들지 못했으니까요. 그리고 이 눈과 당신을 봤으니까, 저는 오히려 만족스러워요."
"...... 바보 같은 녀석."
"알고 있어요."
허나 웃음은 한 순간이었다. 곧 표정을 싹 바꾸더니, 그는 여성에게 질문이란 형태의 꾸짖음을 쏟아낸다. 아니, 그것은 조금은 알기 어려운 걱정이었다. 그런 그만의 상냥함을 여성은 알기에 태연하게 답한다. 오히려 너무도 담담한 태도에 맥이 빠지는 토토다. 변함없는 옅은 미소에 그는 답답함을 느낀다. 꺼내고 싶은 말을 삼키고, 대신 한숨을 내쉬는 신을 네코라 불린 여성은 다시 눈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런 그녀에 그는 자신이 입은 코트를 벗더니, 작고도 둥근 어깨에 걸쳐준다.
"저번처럼 감기나 걸린 모습으로 나타나면 곤란하니, 이거라도 걸쳐라."
"... 감사합니다."
"거절하지 않는거냐."
"제가 거절하면, 토토씨가 괴로운 표정을 지으시잖아요. 그러면 저는 몰라도 당신은 이 눈을 보고도 웃지 않으실테니까."
"그게 뭐냐. 너는 그럼 나 때문에 싫어도 받아들인거냐."
"왜 그렇게 되는거죠? 저는 당신의 친절을 싫다고 얘기한 적이 없답니다."
"처음에는 싫어했던 것을 기억 못할 줄 아느냐."
"보통 갑자기 나타난 외국 사람이 제 이름을 알고, 알기 어려운 친절을 주면 싫어는 몰라도 의심할걸요."
자신의 호의를 망설이거나 거절하지 않는 모습에 토토는 기쁜 한편, 씁쓸함을 느낀다. 더불어 들려온 이유가 어느 의미 바보 같아서, 타인만을 위한 이유 같아 화를 낸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다운 이유이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친절을 싫지 않다고 얘기해준 것이이에 신은 안도한다. 비록 자신들이 나눈 이야기 속 처음이 다르더라도, 그녀가 기억하지 못해도, 가슴이 아파와도 신은 참아낸다.
"너는 눈이든, 비든 내리면 곧 잘 웃지. 매번 이렇게 하염없이 보는 네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요. 저는 그저 좋은거 뿐이에요. 그리고... 이런 날은 토토씨가 오시는 날이 많으니까요."
"... 만약 내가 너를 찾기 위해, 네가 웃기를 바래서 일부러 비나 눈을 내렸다면 너는 기뻐할건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직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신은 언제나의 말투로 말해버린다. 그 말에 실망하거나 기분 나빠하기는 커녕 그녀는 옅은 미소를 유지한채 이유를 얘기한다. 그것이 마치 눈이나 비가 오면 자신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는 말로 들려왔다. 그렇기에 한번 띄워본다. 자신이 신의 힘으로 해왔던 일을 그녀에게 있어 좋은 일이었는지 묻는다. 진지한 목소리의 질문에도 눈을 향한 갈색의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여전히 천천히 떨어지는 눈들을 담고만 있다. 잠시 후, 작은 입술이 열린다.
"만약 토토씨가 그러한 일을 했다면... 저는 기뻐요."
"정말이냐?"
"정말이에요."
"그럼 원래 오늘은 비를 내리고 싶었지만, 기온이 낮아 눈이 내렸다고 한다면 뭐라 할거지?"
"...... 뭔가 이상하고도, 토토씨 답지 않은 질문이네요."
"대답이나 해라."
기쁘다. 자신을 보고 말한 것이 아니지만, 자신이 내린 눈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마치 저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그다. 그래서 일까, 정말 자신이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은 질문을 해버렸다. 다시 조용히 고개를 든 희망에, 욕심에 자신답지 않게 실수에 대한 질문을 건낸다. 그것을 콕 집어 말하는 여성에 괜시리 찔려 재촉해버리는 토토다. 후후하고 작은 웃음소리가 그의 귓가에 닿아왔다. 잔잔하고도 간지러운 웃음소리인데도, 그에겐 동시에 위태롭고도 날카로웠다. 자신에게로 향해진 눈동자는 갈색일 터인데, 한순간 금색으로 보여왔다. 흩날려 내리는 하얀 눈이 연분홍색으로 물들여져 벚꽃잎으로 변한다. 그 광경에 신의 심장은 크게 내려앉는다. 과거의 기억이 그를 뒤흔든 순간 가녀린 두 팔이 뻗어져 온다. 그걸 뒤늦게 인지한 신은 제 품안으로 들어온 그녀 또한 뒤늦게 인지한다.
"그렇다면 그것 또한 저는 기뻐요. 그리고 토토씨가 너무도 상냥하게 비를 내려, 그 비가 너무도 부드럽게 내려서 눈이 되어버린 거에요."
"...... 정말 바보같은 얘기군. 말도 안되는 이유며, 과정이다."
"알아요. 그래도 정말 토토씨가 눈을 내려준거라면, 저는 이렇게 생각할거에요."
"멋대로 해라. 어차피 너는 내가 뭐라해도 그렇게 생각할테니까. 네 녀석의 그 요상한 고집은 영원히 낫지 않겠지."
부드럽고도 상냥한 목소리가 답해왔다. 어딘지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깃든 듯한 대답이었다. 동시에 바보같은 대답이기도 했다. 아무리 자신이 이상한 질문을 했다지만, 그녀는 더욱 말도 안되는 대답을 한 상황에 천하의 지혜의 신도 어이없음을 느낀다. 거기다 자신이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해도,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하는 그녀에 오히려 신이 물러난다. 어딘지 진저리난다는 듯한 말투지만, 그 목소리는 자상했다. 제 품안의 여성을 끌어안는 팔은 조심스러웠다. 그를 아는 누구나라면 놀랐을 장면, 그리고 동시에 애틋할 장면. 아니, 애틋함을 느끼는 것은 그와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존재들뿐이다. 한없이 흐린 존재를 기억하는 존재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