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수가 세계의 곳곳으로 뿌려진 후,
세레니티에 들렸다가 빨리 라니아의 집으로 가고 있다. 혼자 있는 건 위험한데… 라니아에게 빈번히 미안할 일을 한다. 잘 있겠지? 결계에 금이 가진 않았는지 걱정된다. 혼자 끼니는 잘 챙기겠지만, 라니아는 착해서 이상한 사람들을 잘 가려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도, 어쨌든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래도 책임져야 할 가족인데. 라니아에게 죄책감이 들어서 빨리 준비를 하던 중, 비어완이 나를 불렀다.
“너무 늦게 드려서… 죄송합니다. 중대한 일을 하고 계셨기에 차마….”
“죄송하다니, 비어완. 그게 뭐지?”
“보시면 알 것입니다.”
“뭐?”
무심코 튼 영상에는, 실론이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하얀 뒤통수 뒤에 석영이 반사한 빛 같은 이펙트가 주위에 걸려 있었다. 곡의 이름은 회상이었다. 자주 쳐 주었던 곡이었는데, 이제는 들을 수가 없어서 악보를 사서 치기도 했다. 너는 계속 남아서 나를 맴돈다. 네가 쳤던 그 피아노까지도…. 나는 아직 너를 보내지 못했지. 비록 마음은 낭떠러지 절벽만큼이나 갈라져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그 틈에 네가 온다면 다시 새 흙이 쌓이고 다시 풍요로워질 것이었다. 그래. 그냥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큰 존재가 박혀 있던 자리는 늘어나 있었다. 마치 그것이 얼마나 컸었던 건지 보여주는 사진과도 같이, 네가 나를 선명하게 변형시켰는데 너는 없어서 아팠다. 그런데 네가 우리를 회상한다면, 너 역시도 내가 빠진 자리가 늘어나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 매정한 말은 네 전부가 아니었겠지. 여기서 들리는 네 선율이 여전히 아름다워서 모든 기억을 떠오르게 할 정도인데, 선율이라도 안아보고 싶을 정도로 그리운데.
‘사랑해, 루미너스.’
“… …”
피아노 연주가 끝나고, 실론은 끌려가면서 웃었다. 소리 없이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고, 인제야 영상 맨 귀퉁이의 날짜가 보였다. ‘11월 23일’년도는 당연하다는 듯이 작년이었다. 집행 이전에 소원을 들어주는 풍습이 있다고 했는데, 실론의 마지막 소원은 피아노와… 이 말인 건가. 분명히 잊어버리라고, 잊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잊으라는 말만 하고 가더니…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유산이었다. 유산이 아니길 바랐던 사랑….
“사랑해……”
사람이라곤 없는 반질한 영상기기를 붙잡고 껴안고 울다가 또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계속 그 부분만 돌려 듣고, 또 대답했다. 영원히 닿지 않을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