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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유라가 아까 켜놓은 음악이 들려온다. 유독 확실하게 들려온 가사는 얼핏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왜 그런 가사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으나 아마 이런 말일 것이다. 당연하게도 같이 있어야 할 두 존재가 없는 것에 대한 아픔이라고. 그 순간이 아프고도 공허하다는 뜻일거라고 나는 멋대로 해석한다. 정말 그런거라면 공감할 수 있다. 나에게는 사유라가 없을 때의 기분이기에.

  그녀가 없을 때의 나는 지루하고도, 괴롭고도, 공허할 뿐이다. 숨을 쉬는 것도,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도, 감각을 깨우고 있는 것도 전부 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들과 같은 심장은 없으나, 가슴 깊숙히부터 아파온다. 아픔을 느낄리가 없을 핵이 아픔을 호소한다. 사유라가 없는 매 순간은 대부분 내게 의미가 없다. 나는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욕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지구에 오기 전과는 다르고도 더욱 지독해진 이 텅빈 느낌은 억누르기 까다롭다.

 

 

  "한심하군."

  "보로스?"

  "...혼잣말이다."

 

 

  결국 흘러나와 버린 감정을 당연하겠지만 사유라가 들어버렸다. 이건 그녀가 들어봐야 좋을게 없는 말이었는데, 정말 바보같이 입 밖으로 내버렸다. 걱정 많은 내 연인은 지금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겠지. 눈을 감고 있어도 시선이 느껴지며, 나는 그녀의 상냥함을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내게 다가오는 것도 알고 있다. 눈을 뜰까 했지만 떴다가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그만둔다. 허나 입술에 닿은 부드러움과 온기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날 눈 뜨게 한 장본인은 옅은 미소를 지은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제 기운 나셨어요?"

  "나는 기운이 없던 적이 없다."

  "그럼 조금 괴로웠던게 아닌가요? 제게는 그렇게 보여 왔어요."

  "... 점점 너에게 숨길 수 없게 되는군."

 

 

  입 밖으로 꺼내버린 것도 있지만, 거기서 내가 괴로워함을 알아챈 사유라. 내 부하들은 알아차렸을까? 말도 안되는... 그 녀석들이 알아차렸을리가 없다. 나는 그들에게 있어 강하고도 두려움의 보스였다. 자신들을 이끌어 줄거라 여긴 힘의 덩어리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내 기분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더러, 나를 제대로 보지 못 했을거다. 아니, 그 당시에 나도 감정이란 것을 그리 갖지 않았다. 그저 강자와 싸움으로 갈증을 해소하던 때의 난 힘을 쓰고 싶던 힘의   덩어리. 그런 나의 감정들이나 기분을 제대로 알아차린 녀석들이 있었을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눈앞의 이 존재가 날 바꿔주었으며, 나를 바라봐 준다. 누구와도 다른 시점으로, 그저 나를 바라봐 준다. 그리고 나도 이 사랑스런 존재에게 단단히 빠져서 무엇이든 보려한다. 그녀의 전부를 알고 싶고, 내가 독점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나는 이 하나뿐인 존재를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 곁에서 떠나보내지 않을거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 곁에 둘 것이며, 어느 존재도 가져가지 못하게 할거다. 이건 그녀의 기준으로 보면... 그래, 시커멓고도 질척한 감정이다. 소유욕일거다. 아아 전하고 싶다. 내가 그녀를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거라는 이 집착을... 내 기준에선 순수한 이 가녀린 존재가 모르는 이 죄에 가까운 집착을...

 

 

  "그건 서로 피차일반이에요. 저도 보로스에게 숨길 수 없는게 늘어가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아직 난 너의 대해 모르는게 많다고 생각한다."

  "... 보로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도 아직 당신에 대해 모르는게 많다고 여겨요. 그래도 하나는 알아요."

  "뭘 말이지?"

 

 

  사유라가 나에 대해 모르는건 어쩔 수 없다. 내가 일부러 숨기고 있는 과거가 많기에... 누가 뭐라해도 나는 도적이었으며, 그녀가 겁을 먹을지도 모르는 일도 한 적이 있다. 내 손에 파괴된 행성들 중엔 그녀가 좋아했을지도 모르는 풍경이 존재했던 곳이 있었을거다. 그녀가 아파했을지도 모르는 목숨이 있었을 수 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마음으로 내 연인은 울 수도 있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나를 멀리 할 수도 있다. 그걸 원하지 않아, 감추고 있다. 나를 미워하지 않기를 바라는 이 이기적인 마음은 사유라로 인해 생겨버렸다.

  아주 잠깐이지만 생각에 빠진 입술에 한 번 더 부드러움이 닿아온다. 곧 이어 옅은 온기도... 그것은 금방 떨어져 나갔고, 또 내 입술에 겹쳐온다. 아주 잠시뿐만 맞췄다가 떨어지는 키스를 사유라는 몇 번이나 해온다. 한 번, 한 번이 전부 조심스럽고도 정성스러워 그저 사랑스러운 키스를 받는 나다.

 

 

  "그래서 이건 무슨 대답이지?"

  "보로스가 저와의 키스를 좋아하는 사실이요."

  ".................................."

 

 

  그렇게 몇 번인가의 키스가 끝나자, 감았던 눈을 떠 나를 올려다 보는 사유라에게 묻는다. 내 질문에 그녀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답한다. 입꼬리를 살며시 올리면서, 눈을 살짝 접으며 살풋 미소를 짓는 그녀. 생각지 못한 대답과 미소에 여러가지가 날아가버린 기분이 된다. 그저 사유라가 너무 사랑스럽다는 감정만이 남아, 몸이 절로 움직여버린다. 정신을 차리니 이미 나는 그 가는 몸을 다시 품 안에 끌어안고, 작은 입술에 내 입술을 겹치고 있었다.

  방금의 그녀를 따라하듯 입술을 맞춘다. 입술을 뗄 때마다 작은 쪽소리가 울리고, 살짝 떠 있던 사유라의 눈꺼풀이 닫혀버린다. 그것은 어느새 생겨난 우리 둘만의 신호이며 허락이다. 나를 받아들인다는 그 소리없고도 어딘지 우아한 몸짓에 가슴이 미미하게 떨린다. 폭주할 듯한 욕망을 억누르고, 입술을 살며시 핥아 노크를 한다. 그러자 열린 입술 사이로 들어가 그 안을 탐한다. 무엇 하나 상처 입히지 않도록 조심히, 그러면서도 굶주린 짐승같이 탐욕스럽게 키스한다.

  아아, 그 어떠한 훌륭한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이 맛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아니, 그전에 내게 있어 사유라 자체가 어떠한 마약이나 아름다운 존재보다 가치 있고도 갈망하게 만드는 존재다. 음식 따위와 비교할 수 있는게 아닌거다. 어느 존재도 그녀와 비교할 수도 없고, 가치를 겨눌 수 없다. 그만큼 나는 이미 이 존재에게 미쳐버린 것이니까.

 

 

  "아까까지는 부끄럽다면서 눈도 못 마주치더니... 먼저 키스하질 않나, 그런 앙큼한 말까지 하지 않나. 무슨 생각인거냐."

  "저는 그냥 보로스가 기운나길 원했고, 저도 보로스를 좋아하니까..."

  "...... 너란 존재는 정말..."

 

 

  긴 키스가 끝나 입술을 뗀다. 나는 없는 불평을 담아 그녀에게 따진다. 그리고 조금은 뜨거운 숨을 고르며 답하는 사유라에게 격침을 당한다. 진짜 이 녀석은 자기 말로는 알건 다 아는 성인이라면서 이런 모습을 보면 순수하기 짝이 없다. 그래그래, 내가 욕망에 찌들었고 이런저런 생각을 다 하는 밝히는 존재인거군. 물론 이건 이 사랑스런 존재 한정이지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가는 어깨에 얼굴을 묻어버린다. 키스 할 때와는 조금은 다른 향이 맡아져 온다. 진하지 않은 이름 모를 옅은 향에 한 번 더 나를 부추기려 한다. 넘치려는 욕망을 억누르며, 입을 연다.

 

 

  "근데 이제 부끄러운건 괜찮은거냐."

  "음- 아마도요.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려고요."

  "단순하게?"

  "너무 부끄러울 만큼 제가 보로스를 좋아한다는 걸로요."

 

 

  본인은 전혀 모르겠지만, 이 존재는 나를 인내심이란 독으로 죽일려고 하는 것 같다. 아니면 다른 녀석들이 말하던 상사병으로 말이다. 서로의 사랑을 받아 들이고, 연인이 되었어도 너무도 사랑하고 사랑해서 상사병을 가진 기분이 된다. 그리고 가끔 넘쳐나는 이 감정에 폭주하여 이 손으로 이 가녀린 몸을 꺾어버릴 것만 같다. 그러면 안되기에 언제나 참아내지만, 온 힘을 다해 끌어안지 못하는 이 애달픔은 어찌 할 수가 없다.

 

 

  "정말 너는 나를 미치게 만드는군."

  "칭찬인가요?"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저는 칭찬으로 생각해요."

  "이유는?"

  "미치게 만들 만큼 보로스가 절 좋아한다는 얘기잖아요."

 

 

  언제부터 이 존재는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된 걸까. 만난지 얼마 안되었을 무렵에는 절대로 하지 않았을 얘기를 이제는 제법 당당하게 얘기한다. 부끄러워서 못했던게 아닌 자신이 내게 사랑받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누군가의 애정이 아파서 말하지 못했던 시유라. 그녀는 스스로에게 가치를 두지 않았기에 자신을 향한 누군가의 애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랬던 그녀가 지금은 내 귓가에서 읊조렸다. 자신을 사랑하는 나란 존재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그것이 기쁘고도 고마워서, 사랑스러워서 나는 작은 입술에 또 다시 키스한다.

  이름 모를 그녀의 향과 따스한 온기를 느끼는 도중 노래가 들려온다. 그것은 아까처럼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가사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만든 녀석은 제법 뭔가를 아는 녀석일거다. 같은 종족도 아닌 나를 이렇게도 공감가도록 만들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 가사를 마치 내가 하는 말처럼 속으로 중얼거리며, 사유라와의 키스에 집중한다. 따스하고도 치명적인 행복에 취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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