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어디 있어요?”
바스락거리는 연보라색 숲속이다. 잔디류도 라벤더도 전부 보라색이거나 연보라색이거나… 라벤더색과 라일락색의 천국… 판도라의 의식 속은 이런 걸까. 조금 더 지나가니 하얀색 문이 나온다. 이곳에 판도라가 있는 걸까? 빨리, 저기 있는 단풍나무로 가지 않으면 의식 속에서 나갈 수 없는데… 어쨌든 그 문을 열고 나가니 타원형 거울이 밑바닥까지 덕지덕지 붙은 복도가 있었다. 그리고 그 거울 하나하나에는 사람이나 장면이 담겨 있었다.
‘판도라를 좋아해!’
‘나도 좋아해!’
‘나는 사랑해!’
판도라의 팬들인가, 가족도 있는 것 같다. 그 속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따뜻하고 유쾌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세간의 이목을 얻는 연예인에 아주 출중한 미모는 역시나 사랑받을 거였나보다. 그녀는 성격까지 좋으니까 역시나……
‘으흐흐…’
저자는 누구지? 뭔데 저런 음침한 표정을 하고 웃고 있는 거야? 저것도 판도라를 향한 건가. 그러고 보니 치마를 들친다던가, 밑에서 보고 있는 사람, 이상한 곳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 판도라의 시점에서 보인 사람들의 모습 같았는데,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판도라가 받은 시선들이란 말인가. 어떤 사람은 판도라를 밀치기도 해서 그만 내가 거울을 깨 버릴 뻔했다. 다른 사람의 의식 속은 훼손하면 안 되니까, 그냥 꾹 참고 거울이 가득한 복도를 지나갔다.
‘판도라는 어딘가 다른 사람 같아.’
‘너랑 많은 걸 얘기하고 싶지는 않아.’
‘너는 내 동생인데 이상해.’
이상하다고? 심지어 가족마저? 멈칫해서 다시 그 거울들 쪽을 보자 아주 친절했던 사람들은 마구 떠나가서 자기들끼리 놀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계속 친절했지만, 돈을 요구하기도 했고, 사귀다가 헤어지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단지 어딘가 자기랑 다르다는 이유로… 그래서 힘들었구나. 다른 유전자가 심겨 있다는걸 ‘다르다’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유전자가 심어진 줄은 모르지만 자기랑 다른 뭔가가 있다는 것을 알았겠지. 판도라가 20살이 될 때까지 연애한 사람들은 모두 그런 이유로 떠났다. 부모님도 판도라를 조금씩 멀리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나았지만… 그녀는 무척 외로웠을 것 같다.
‘......’
계속 걸어온 거울 복도의 끝에는 라일락색 나무문에 거울이 걸려 있었다. 거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등나무가 가득한 꽃밭을 비추고 있었다. 어쨌든, 여기에는 판도라가 있겠지 하며 쇠로 된 문고리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