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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네 번째의 전화였다. 여자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오늘따라 울상이다. 문자는 어젯밤부터 몇 번이고 보냈지만 답이 오지 않는 것은 여전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불안한 생각들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혹시, 이전처럼 그가 엄청난 문제에 처한 건 아닐까? 수많은 물집이 잔뜩 부풀어오른 그의 왼쪽 얼굴을 그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혹시 그 때와 같은 일이라면, 이대로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여자는 주먹을 꼭 쥐었다. 붉은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이 그녀의 손바닥을 파고 들어간다.

 

  몇 시간이 되고 나서야 이어진 그의 갑작스러운 연락. 그녀는 당시에 하고 있던 임무도 미뤄두고 당장 그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녀를 맞이한 것은 온몸에 그을음이 잔뜩 껴서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제 왼쪽 얼굴을 손으로 움켜쥐고 있던 그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 가슴이 무너지는 줄만 알았다. 서둘러 그의 곁으로 달려가 그를 구출해왔다. 그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가 원통해하고 분노했던 것을.

 

  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듯 올라오는 그의 감정을 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여자는 그 이유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그녀가 그 자신은 아니기에, 그것이 맞는지는 확실치 못했지만 그녀는 그의 감정을 이해하고 있었다. 아무렴, 제가 누구보다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만큼, 알 수 있는 것도 많았다. 그것이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까지 몰고 갔는가? 마치 제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은 감정. 그것은 동정과는 다른 무엇이었다.

 

 그를 의사에게 데려가고, 수술이 끝난 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의 곁에 꼭 붙어서 날이 가도록 간호했다. 제 조직에서 오는 연락도 전부 끊었다. 녀석들이 저를 죽이러 오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가 다시 눈을 떠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들의 소재상, 그들의 신분상 제대로 된 의료 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 어쩜 그리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저 바라고 또 바랐다. 평소에 잘 믿지도 않는 신에게 그가 무사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가 잠든 듯이 쓰러진 일주일은 그녀에게 있어서 지옥과도 같았다. 제가 믿던 세계가, 제가 지키던 세계가 바람 앞 촛불처럼 사라지려고 했던 그 나날을 그녀는 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기도하고 바라던, 그가 일어나서는 저를 보고 했던 말 한마디도.

 

  기계음이 몇 십 번이고 들리고 나서야, 응할 상대가 없는 전화는 이내 끊긴다. 힘없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딘가 모를, 기분 나쁜 두근거림은 분명 나쁜 예감이 들게 했다. 눈으로 밖을 바라보니 비가 우수수 쏟아지고 있었다. 여자는 두 손을 제 가슴 위에 모았다가, 입술을 깨물더니 다시 한 번 휴대폰을 들어 다른 이에게 연락을 취해본다. 문자를 보내기로 했다. 텍스트를 치는 손가락이 조금씩 떨려와, 마음 같아서는 어서 보내버리고 싶은데 그게 그녀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문자를 전송하고 몇 분 뒤, 띠링 하고 그녀의 휴대폰이 수신을 알린다. 얼른 화면을 터치하여 확인해보니, 그녀가 그렇게 기다리는 그 사람의 것은 아니었다. 눈에 띄게 실망하면서도 아까 보낸 문자의 답장이란 것을 알고 그녀는 빠져들 듯 찬찬히 문자의 내용을 살펴본다.

 

  “…오, 다행이다.”

 

  힘이 빠진 목소리가 그제서야 목구멍에서부터 흘러나온다. 안도에 잠긴 목소리였다. 그들의 동료이자, 그의 친구에게서 대신 그의 소식을 들은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그녀가 생각하던 최악의 상황은 찾아오지 않은 듯 했다. 그가 무사하다는 것만 알면 그걸로 충분했다. 불안하게 창 밖을 바라보던 푸른 눈동자의 눈꺼풀이 감긴다. 한 순간에 무거워진 몸을 질질 끌어다가 소파에 앉았다. 그리곤 입술을 다시금 깨물었다.

 

  그가 제 연락을 받지 않는 이유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분명 자신과의 대화를 기피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녀 자신도 자각하고 있듯, 그녀는 그와 관련된 어떤 일에든 과보호적인 면이 있었으니까. 그가 꽤 초조해하고 있는 건 최근의 일로 익히 이해하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까 그를 그냥 내버려두는 게 본래는 맞을 것이다. 그는 저에게 신경을 써줄 만큼의 여유가 없다. 자신의 헌신은, 지금 그에게 있어서 단순한 참견, 귀찮고 성가신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그를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며칠 전부터 느끼고 있는 기분 나쁜 두근거림. 무언가 일이 터질 것만 같은, 나쁜 예감이 그녀가 그에게서 손을 놓지 못하게 했다.

 

  눈을 감으니 쏟아지는 비 소리가 더욱 그녀의 귀에 잘 들어왔다. 밝고 화려한 등 아래에, 그녀는 혼자 소파에 앉아있었다. 유리창에 비춰지는 샹들리에가 습기가 낀 창문에 번질거렸다. 손을 뻗어 제 가슴 위로 늘어진 길다란 로켓목걸이를 붙잡는다. 차갑고 묵직한 그것의 뚜껑을 열어보려다가, 그랬다가는 마음이 더 미어질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그녀는 그저 눈을 감고 있었다. 한 손으로 로켓목걸이를 꼭 쥔 채, 그가 안전하다는 말을 듣고서도 채 가시지 않은, 기분 나쁜 두근거림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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