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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함이 어울리는 방 안에서 신은 깊이 잠든 여성을 내려다 보고 있다. 이제는 음악도 없어 고요함은 짙어졌지만, 희미한 그녀의 숨소리가 확실하게 그의 귓가에 닿아왔다. 너무도 작고도 얕은 숨소리에 토토는 걱정이 커진다. 아까 끌어안은 그녀의 가녀림과 무게를 떠올린다. 더욱 살도 근육도 줄은 팔과 다리, 그만큼 줄어든 몸무게. 날로 혈색이 어두워지는 얼굴.

 

 

  "또 약해졌어."

 

 

  잠시 펴져있던 미간이 순식간에 좁아진다. 토토는 전생과 비교해 또 약해진 그녀의 몸에 위대한 신조차 무력함을 느낀다. 어떻게든 해야한다는 조급함에 그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다. 모든 지식을 뒤적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조합하고,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허나 무엇하나도 완벽한 해결법이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실패해 온 과거들만이 떠오른다. 그것에 짜증이 솟아난 신은 무의식적으로 제길이라고 중얼거린다.

 

 

  "이번에도 실패하는 건가... 또 너를 나는 어찌할 도리 없이 보내야만 하는거냐..."

 

 

  분함과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에 이가 갈리는 소리가 섞인다. 떠오르는 수 백 번이 넘는 이별들이 신의 정신을 뒤흔든다. 모형정원이 붕괴한 그 순간부터 꼬여버린 운명으로 인해 반복되어 온 이별은 토토 카도케우스, 이집트의 위대한 신 중 한 명인 그를 괴롭게 만든다.

 

  [토토님, 저는 결국 이기적인 인간... 아니,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제멋대로의 결말을 선택하겠습니다.]

 

  아득한 오래 전의 기억 속 '그녀'의 말을 떠올린다. 연기를 마친 모습으로 자기 좋을대로 이별을 고한 존재를 떠올린다. 괴로워하는 자신에게 미소를 지어보인 여성을 신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무너지는 작은 세계 속에서 자신을 내친 그녀를 잊지 못한다 만들어진 존재 이외의 모두가 잊어버린 존재를 그만이 기억하며 고통스러워한다.

 

 

  "웃기지마라. 그딴 결말에 내가 너를 포기할거라 여긴거냐. 내가 너를 잊을거라고 여긴거냐?"

 

 

  분노와 원망에 가까운 감정이 담긴 목소리로 신은 잠든 여성에게 묻는다. 허나 당연스럽게도 대답은 없다. 자신을 이렇게도 괴롭게 만들었으면서도 무엇 하나 기억하지 않은채 잠들어 있는 그녀. 토토는 그런 그녀의 얼굴 양 옆에 손을 짚는다. 침대의 스프링이 끼익하는 소리가 한순간 크게 울린다. 그러나 그 소리에도, 흔들림에도 여성은 깨어나지 않는다. 마치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듯이...

 

 

  "바보 같은 네코 같으니... 왜 너 혼자 괴로운 길을 선택한거냐. 왜 네가 희생되는 방법을 선택한거냐."

  "......"

  "그렇게 해서 얻어낸 평화에 내가 납득할거라 생각한거냐. 네가 없는 시간들을 아무렇지 않게 존재할 수 있을거라 여긴거냐."

  "......"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았을 신이 괴로워한다. 자신을 두고, 몇 번이고 사라지는 이기적이고도 잔인한 여성으로 인해 토토는 조금씩 무너져 간다. 허나 그는 결국 그녀를 진정으로 원망하지 못힌다. 증오하지도 못한다. 내쳐버리지도, 잊어버리지도 못한다.

  허나 그런 그도 한 때는 그녀를 원망하려, 잊으려 했던 적도 있었다. 영원에 가까운 시간 괴로울 것이라면 차라리 잊어버리자고, 증오하자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신은 그러지 못했다. 미워하려, 증오하려 하면 떠오르는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떠올라 불가능했다. 푸른 하늘에도, 잔잔한 바람에도, 작은 꽃 한 송이에도, 밤의 조각 하나에도... 모든 것에 그녀를 떠올릴 뿐이었다. 어느 하나 그를 그녀에게서 놓아주지 못했다. 아무리 필사적으로 잊으려 해도, 일에 전념해도 신은 사랑하는 여성을 잊을 수 없었다.

  결국 괴로움에 신은 그리움에 져서 사랑하는 여성을 찾아냈다. 그녀는 그때도 여전히 신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영혼에는 자신을 향한 죄책감으로 가득 차 있음을 신은 알아차렸다. 아니,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때에도 이미 몇 번이나 반복 되었던 일들이다. 그녀의 미소도, 눈물도, 아까의 질문도 무수히 반복되어 왔다. 그리고...

 

 

  "긴 시간 끝에 너를 다시 만날 때마다, 네가 나를 부를 때마다... 결국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걸,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걸 깨달을 뿐이다."

  "......"

  "네가 진정한 의미로 나를 잊지도, 사랑하지 않는 이상... 아니, 그렇게 되더라도 나는 너를 사랑하겠지."

  "......"

  "정말 사랑이란 아픈 감정이군. 안 그러냐? 사유라..."

 

 

  자신도 그녀도... 서로가 결국 완벽하게 잊지도, 미워하지 못 한는 것을 신은 깨달았다. 그렇기에 되찾기로 결심했다. 포기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설령 모형정원에서 지낸 짧은 행복의 시간을 되찾지 못하더라도, 그녀를 구원할 방법을 찾지 못하더라도... 토토는 사유라를 계속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최악의 끝이 소멸일지라도 신은 사랑을 선택한다.

  창 밖은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허나 밤의 어둠은 어느새 물러나 새벽의 어슴프레한 밝음과 새하얀 눈으로 세상은 덮이고 있었다. 그녀가 보면 분명 좋아할 풍경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깨우지 않는다. 따스한 온기를 되찾은 하얀 볼을 아주 살며시 어루어 만진다.

 

 

  "또 오마. 죽음보다 지독한 마음의 고통에도 견디며 오마. 너를 구하기 위해 나는 죽음까지 이겨내마."

  "......."

  "그 누구도, 설령 너라 해도... 그 무엇도 너에게 닿기 원하는, 너를 사랑하는 내 마음을 흔들 수 없을거다. 흔들려도 견뎌내어 너에게로 오마."

  "......"

 

 

  신이란 존재 이전에 그저 사랑에 빠진 존재로서 맹새한다. 마치 동화 속 잠자는 공주처럼 잠든 그녀에게 신은 맹새한다. 절대로 깨지 않을 맹새를 한 토토는 사유라의 입술에 살며시 입맞춤을 내린다. 그리고는 다시 찬란한 신의 모습으로 돌아가 창 문 밖으로 날아오른다. 밝아오는 새벽녘을 달려간다. 사랑하는 존재를 구원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더불어 그녀가 좋아한다고 해주었던 긍지 높은 신으로서의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토토는 자신의 세계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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