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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텀은 쉐리를 에레브의 숙소로 귀환시켰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손에 쥐어진 네모난 유리병의 향수는 아주 진한 분홍색이거나, 어쩌면 아주 붉은 색인 것 같습니다. 마치 진한 로즈 쿼츠 색에 붉은색을 탄 것 같은 액체가 넘실거리는 마름모 무늬를 만들며 쉐리의 손안에서 반짝였습니다. 100mL가량 되어 보이는 대용량의 향수, 옷에 뿌리면 하얀 와이셔츠가 붉게 물들지도 모릅니다. 어쩐지 그래도 상관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향수의 하얀 라벨에 ‘Phantom’이라는 글자가 푸른 글씨로 쓰여 있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그의 사랑을 표현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일까, 전혀 모르겠지만ㅡ쉐리는 금색, 아마도 순금인 것 같은 뚜껑을 열어버리고 빤히 그걸 바라보다가 피어오르는 향기에 코를 내밀어 봅니다. 만개하는 장미들이 가득한 장미 정원이 있었습니다. 그 속에는 새벽에 내린 비가 만든 청초한 물방울이 꽃잎을 무겁게 쥐고 있다가 떨어지며 빛났고, 장미 덩굴들과 잎사귀의 향긋한 풀 내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장미 가시를 거둔 듯합니다. 향은 덩굴처럼 피어올라 팔과 다리를 감싸고, 쉐리는 이 사랑이 어떤 것인지 생각했습니다. 분명 아름답지만, 가시덩굴을 치고 있었던 마음이, 자신을 향해 만개한 꽃들을 안아 달라고 하는 듯 다가와 손을 잡고, 나를 믿으라며 입을 맞추고, 당신을 원하니 춤을 추자고 속삭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를 믿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사랑은 이렇게나 간절하고 깊으니까, 나도 그 사랑에 빠져 춤을 추고 싶다고. 쉐리의 팔은 장미들을 안았고, 이윽고 그녀는 금으로 된 스프레이 부분도 열었습니다. 뚜껑들은 나무 바닥에 나뒹굴다 톡톡 튈 때마다 별이 뛰고 또 뛰듯, 노랗게 빛을 반사하며 크게 빛났습니다. 장미 수정을 녹여 꼭꼭 쌓아둔 것 같은 향수액을 온몸에 들이붓자, 구슬같이 속이 비치며 영롱한 꽃분홍 방울들이 봉긋한 입술을 동그랗게 벌린 것 같은 유리병 구멍 사이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쉐리의 금발은 향수에 젖어 분홍빛으로 곱슬거렸고, 하얀 턱선과 속눈썹에 장미색 방울들이 분홍 물길을 만들다 맺혀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점차 퍼져서, 흰 와이셔츠를 물들이고 치마를 적셔서 내려가 하얀 종아리의 곡선을 따라 또르르 분홍으로 물들이며 흘러내렸습니다. 마침내 발등에 도착해서는 몇 방울이 침대에 떨어져 침대 시트에 분홍색 작고 동그란 발자국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이런, 너무 행복하네.”

  “이렇게나 많을 줄은 몰랐지만, 괜찮네요.”

  “마법이니까, 용기의 양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팬텀은 쉐리의 위에 나타나, 자신의 사랑을 아예 뒤집어쓴 볼을 쓰다듬으며 젖어서 생기 있어진 입술을 엄지로 매만졌습니다. 탱글탱글한 입술 저 너머에는 자신이 원하는 숨과 마음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어서 내게 키스해서 그것을 모두 내어 달라고, 허리를 끌어안으며 사랑해, 하고 귀에다 속삭입니다.

 

  “너보다 사랑스러운 사람은 없을 거야.”

  “그거, 과찬이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당연하지. 인정할 건 인정해, 내 사랑을 뒤집어쓰면 당연히 사랑스럽잖아.”

  “사랑해요.”

  “쉐리, 갑자기 말하는 건 해로워. 물론, 나도 마찬가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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